한국과 북미는 전화번호가 꺼꾸로이다. 북미의 비상 전화번호는 ‘911’이고 안내전화번호는 ‘411’이다. ‘311’도 있는데 이것은 지방 자치 단체인 시청으로 연결되어 각종 민원을 해결하는데 사용된다.
911 에 신고를 하게 되면, 경찰, 소방차, 그리고 응급차가 상황에 따라 출동하는데, 경찰차는 주위에서 무전을 받아 보통 몇분 걸리지 않아 도착한다. 신고 통화내용은 녹음이 되며, 신고자의 소재지도 파악이 되어 설령 통화를 하지 않고 전화를 끊더라도 경찰차는 출동할 수 있다. 경찰이 도착하는 동안에도 911 요원은 전화상으로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상황을 파악하여 적절한 지시를 계속 내린다. 이렇게 하는 동안 경찰이 도착하면 비로서 911 대원은 임무를 마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필자가 교통사고를 보고서 911에 전화를 하였는데 그 911 대원은 필자의 신원, 사고 위치, 사고 상태, 응급차가 필요한지 등 갖은 질문을 하였다. 당시 나는 바쁜 일이 있었고 다른 사람이 911에 이미 전화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 상황을 전달하고 전화을 끊으려 해도 나에게 책임을 지우며 필자에게 응답할 것을 요구하여 당황한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911 직원도 자체 규정이 있어서 따라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니 이해는 되지만, 규정이 때론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을 느꼈다.
부부싸움을 하여 신고가 되면 경찰차가 한두대만 출동하여도 불빛이 요란하여 동네에 쉽게 알려진다. 경찰은 남편과 부인 등을 따로 떼어서 질문을 하고서 사건을 파악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찰이 물어 볼 경우에, 여러가지 정황을 자세히 말하여 주면 오히려 나중에 증거로 채택되어 검찰이 기소하는데 사용될 수 있으므로 함부로 말하는 것을 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경찰이 조사 결과 가정 폭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통보하여 주고 수갑을 채워 체포한다. 경찰서 유치장으로 연행되면 옷에 있는 모든 소지품과 신발, 허리띠, 외투나 정장 등을 압수 보관하고 신원확인, 전과 조회, 열손가락의 지문 채취 및 사진 촬영 등의 과정을 밟는다. 사진은 전면과 측면 그리고 상처 등을 찍는다. 여기서 피의자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지 아닌지에 의해서 진행 과정이 달라진다.
만일 영어가 서투르면 경찰은 통역을 원하는지를 묻고, 통역관을 부르게 된다. 가끔 다행히 통역관이 빨리 와서, 사건이 경미하고 단순히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나 의사소통 문제라고 인식이 되면 경찰이 판단하여 사건이 종료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의자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이미 캐나다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고 간주하여, 더 이상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배려는 필요치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일단 입건(Charge)이 되면 검사(Crown Attorney)의 손에 사건이 넘어가 정식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된다.
영어가 가능한 피고인은 자신의 기록을 적게 한 뒤에 원하는 변호사가 있는지 묻고, 없는 경우 지역 변호사 리스트를 보여주고서 아무나 선택하여 변호사와 통화할 것을 권유 받는다. 변호사와 통화 할 의무는 없지만 여기서 통화하는 것은 무료이다. 변호사는 대개 묵비권을 행사 할 것과 다음에 일어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준다.
유치장 시설은 여름에도 추워서 피의자는 이불도 없는 철판 침대에서 떨며 밤낮 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식사시간에는 간단한 빵과 우유를 배급 받기도 한다. 유치장에 갇히면 본인이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 하여도 보통 다음 근무날 검사가 도착하여 취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금요일 오후에 싸우면 유치장에서 월요일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여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말을 좀 하고 싶었다는 사람도 있다. 피고인은 24시간 이내로 석방되는 것이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 연장될 수 있다. 검사로부터 기소가 된 후, 피고인이 도망이나 재범의 위험이 없다는 것이 판단되면 석방 조건으로서 제한 명령(Restraining Order)에 싸인을 하고 풀려날 수 있는데, 보통 집과 배우자 근처에 일정 거리 이내 접근 금지, 가족과 통신 금지 및 피고인의 새로운 주거지 신고 등이 제시된다. 피고인은 풀려났을 때 머무를 거주지의 주소를 유치장에서 친구 등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등록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싸인을 하고 풀려나면 피고인은 하루 아침에 떠돌이 신세가 되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제한 명령을 받고 풀려난 후에는 부부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이혼을 한다 하여도 합의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변호사나 제 삼자를 통하여 배우자와 의견교환을 하게 된다.
제한 명령을 받은 피고인은 풀려난 직후 경찰의 입회하에 딱 한번 집에 잠깐 들어가서 자신의 간단한 물건을 챙겨 나올 수 있다. 경찰이 피고인이 석방 조건인 제한 명령을 성실히 지키는지 감시하지는 않지만, 만일 이를 어긴 점이 경찰에 다시 신고가 들어가면 피고인은 죄가 추가되어 구속되는 등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피고인은 더 이상 배우자와 대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사가 기소한 후에 부부싸움으로 인한 가정 폭력이 중대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양교육이라 하여 부부싸움의 재발을 막는 소정의 그룹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 교육을 마치면 증명서를 나중에 법원에 제출하여 형을 감량받는 데 참고가 되기도 하는데, 해당 검사에게 미리 물어보면 이런 교육이 감형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재판에서 유죄(Guilty)가 인정이 되면 판사는 징역형(Imprisonment)이나 무조건 석방(Absolute Discharge), 조건부 석방(Conditional Discharge), 또는 사회봉사형(Community Service) 등을 선고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부부싸움이 경찰에 신고가 되면 거의 대부분 이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다시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이보다 더 특이하게 911 신고를 7번 정도 하면서 헤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마침내 합의하여 헤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보면 부부의 인연은 한쪽의 노력으로만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22.12.13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