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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은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되어 있어 마치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인도, 아랍, 아프리카, 원주민 등의 사람들과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낮아서인지 경쟁이 덜 심하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지맘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삶의 자세가 더 있다.
원주민(Aboriginal People)은
크게 First Nations, 이누잇(Inuit), 그리고 메티스(Metis)의 세가지로 나뉜다.
이누잇은 북극 근처의 아주 추운 곳에 살고 있으며 우리에게 에스키모(Eskimo)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에스키모(Eskimo)라는 단어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 이란 뜻에서 유래했는데, 요즘은 비하하는 단어로 인식되어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보다 남쪽에 살던 다양한 모든 원주민들을 정부에서 식민지 초기에 추운 북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들을 통틀어서 First Nations 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제 정부로부터 주택이나 경제적 지원 등의 혜택도 받고 있으나 술, 담배를 많이 소비하고, 범죄나 대마초 등의 사회문제도 많이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륙의 종족이 거의 멸종을 하여 모든 것을 잃은 역사의 비극 뒤에 남겨진 자손으로서 망연자실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티스는 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가리키며, 유럽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2016년 기준으로 캐나다 인구의 1.5% 정도인 6십만명 정도가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는 이들을 메스티소(Mestizo)라고 부른다. 한 메티스 친구네 파티에 놀러가서 밤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화해한다(Reconcile)”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수의 양쪽을 부모로 하여 태어나면 자식은 누구 편을 들 수 있겠는가? 이 자식의 정신세계에서 표면만의 화해가 아닌 내면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은 무엇일까, 유럽인과 원주민의 공통 분모는 무엇인가? 시간을 오래 거슬러 가면 결국 다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고, 멀리 우주에서 보면 모두 정처 없이 떠도는 지구 위에 살고 있는데 …
캐나다 흑인은
미국과 그 역사가 조금 다르다. 캐나다에는 흑인 노예가 많지도 않았고 노예를 필요로 하는 산업도 별로 없었다. 노예제도도 미국보다 31년 일찍 1834년에 금지되었다. 이런 영향인지 캐나다의 흑인은 인상이 순박하게 보인다는 말을 들었고 필자도 그렇게 경험했다.
흑인은 대개 키가 크고 운동도 잘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같은 흑인이더라도 노예의 과정을 겪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바로 온 흑인을 만나보면 한국인보다 신체조건이 좋다는 인상을 별로 못받았다. 같은 흑인인데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아메리카 흑인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불과 몇백년전 이들은 옛날 한국의 머슴이나 종보다 훨씬 심한 취급을 받아서 가축과 같았다. 고향에서 노예로 잡혀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살아남고 종자개량되는 속에서 신체 조건이 중요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런 유전자가 자손에게 물려지는 과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런 피눈물나는 시련을 겪으면서 형성된 신체 조건으로 인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흑인 남자의 인기가 좋은 면도 있다.
한편 당시 사회는 기독교 단체가 성경의 노예를 인정하는 구절들에 힘입어 노예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사람들을 이끌었었는데,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 천주교와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는 지난 수천년에 달하는 이런 잘못된 입장에 대한 사죄를 하였다.
비록 인류가
많은 시행착오를 하여 왔지만 현대에 들어와 널리 인권(Human rights)을 알게되어, 이런 잘못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고, 더구나 캐나다는 이제 인권 선진국이다. 인권은 서양에서는 르네상스(Renaissance)에 들어와 다시 출발하였는데, 이는 르네상스가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를 기둥으로 세워진 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해서 말하면, 르네상스 전의 유럽인들은 지금 중동의 이슬람 국가 사람들처럼 신(神)만 의식하며 (혹은 인간 밖에서 존엄성을 구하며) 살았었는데, 르네상스라는 것은 인간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법과 상식의 기준이 신이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인권이 기준이 되어, 이제는 신을 안믿어 감옥에 가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한국인은 부처를 안믿는다고 감옥에 가거나 목을 잘린 전통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중세 서양에서는 무시무시했고 사형도 많이 당했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지금도 신이 기준인 이슬람 국가에서 신성(神性)이 인간성(人間性) 위에 군림하는 것을 보면, 인권도 과학도 몰랐던 그 시절에 서양이 어떠했겠는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이 믿는다하여 바른 종교라고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옛날도 당시는 지금이었고 지금도 시간이 지나면 옛날이 된다.
묘하게도 동양의 불교(佛敎 Buddhism)는 신에 눈을 돌리지 않고 모든 인간에 있는 법(法)과 불성(佛性)을 일찌감치 설하여 인간 자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이끌어냈다.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도 이런 바탕에서 나와서인지 지금도 빛나는 전통 이념이다.
인종별 인구 구성은
백인이 75% 정도를 차지하여 가장 많고 아시아인이 15% 정도, 원주민이 5% 이하이다. 동아시아인(한국, 중국, 일본)은 5% 정도이고 한국인은 0.5% 정도이다. 흑인은 캐나다에 3% 정도가 있는데 이는 10% 가 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참고 (Reference)
캐나다인:
https://en.wikipedia.org/wiki/Canadians
메티스:
https://en.wikipedia.org/wiki/M%C3%A9tis
군대를 보내 ‘하나’ 신(神)을 따르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완전히 학살하되 처녀만 살려서 데리고 있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들 – 당시 유럽인들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http://www.evilbible.com/evil-bible-home-page/rape-in-the-bible/
미국에서의 노예 번식:
https://en.wikipedia.org/wiki/Slave_breeding_in_the_United_States
성경의 노예제:
https://en.wikipedia.org/wiki/The_Bible_and_slavery
노예제에서 기독교 단체의 역할과 사죄:
http://www.slaverysite.com/Body/morality.htm
르네상스:
https://ko.wikipedia.org/wiki/%EB%A5%B4%EB%84%A4%EC%83%81%EC%8A%A4
갈릴레오 갈릴레이 – 지구가 돈다고 하였다가 교황이 이끄는 종교재판에 걸리자 “맹세코 포기하며, 저주하고 혐오한다”고 목숨 걸고 거짓말해서 간신히 살아났는데, 약 400년전 유럽의 단면을 보여준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0%88%EB%A6%B4%EB%A0%88%EC%98%A4_%EA%B0%88%EB%A6%B4%EB%A0%88%EC%9D%B4
기독교와 폭력 – 기독교의 전통 제사 방식은 동물을 태우는 것이었는데, 태워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하늘에 있는 신에게 바친다고 생각해서였다. 특히 양에 죄를 씌워 많이 잡았기 때문에 속죄양(Scapegoat) 또는 희생양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런 전통에 덧붙여 종교재판 처형 방식으로는 화형이 유행했었는데, 여기에는 사람 속에 있는 악마를 말끔히 태우려는 의도가 있었다. 신을 위해 사람을 잡았던 이런 인식을 지금 보면 마귀에 홀려 생사람 잡은 것이었다고 하겠다: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ianity_and_violence
홍익인간(弘益人間):
https://ko.wikipedia.org/wiki/%ED%99%8D%EC%9D%B5%EC%9D%B8%EA%B0%84
캐나다 인구 구성:
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Canada
2022.12.13 Update